응원하는 달님 ^^

녹슨 대문과 오래된 담장의 그림을 보면서도 우린 끊임없이 읽어내고 있다. 

유영만 교수의 <독서의 발견>에는 문장 하나 하나가 소리를 친다. 

읽어도 읽어도 읽을 수 없으니 읽으라고 말이다. 

"...정희진의 <정희진처럼 읽기>를 읽어도 나는 여전히 나처럼 읽고 있지 않았다. 

정민의 <오직 독서뿐>을 읽어봐도 오직 왜 독서뿐인지 확연하게 드러나 있지 않다. 

이덕무의 <문장의 온도>를 읽어봐도 문장의 온도가 몇 도인지 알 길이 없으며 

정혜윤의 <침대와 책>을 읽어봐도 책은 왜 침대와 가까이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고.."

녹슨 대문의 호소, 오래된 담장의 이야기를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

누가 읽으라고 호대게 야단치지 않아도 우리는 본능적으로 읽어낸다.

모리스 메를로 퐁티가 인정한 것처럼 언어는 인간 속에 내재해 있고 언어는 스스로

가르치고 스스로 해석한다. 

그래서 읽어도 읽어도 읽을 수 없지만 또 읽어낸다.

그렇게 읽어내다 보면 어느 순간 텍스트와 삶이 공명하게 된다. 

읽어냄의 과정이 곧 삶이다.

그래서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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