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하는 달님 ^^

슬픔이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 그러자 뒤따르는 일말의 죄의식, 때로 스스로 생각한다. 나의 지나친 슬픔은 결국 너무 예민한 나의 감수성 때문이라고... 롤랑 바르트

"슬픔이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 그러자 뒤따르는 일말의 죄의식. 때로 스스로 생각한다. 나의 지나친 슬픔은 결국 너무 예민한 나의 감수성 때문이라고 . 하지만 나는 평생 그렇지 않았던가. 항상 너무 지나치리만큼 예민하게 느끼지 않았던가?".... 롤랑 바르트 <애도일기>

눈은 타고난 슬픔의 색이었나? 마음을 하얀색 페인트로 몇 번이고 덧칠해버려서 아침이 오고 저녁이 가고 밤이 찾아오는 색의 변화를 거의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마음만으로는 될 수도 없고 꼭 내 마음 같지도 않은 일들이 봄에는 널려 있었다."는 박준 시인의 싯구를 읽어내며, 빨랫줄에 슬픔 하나 슬픔 둘 슬픔 셋 그렇게 외줄 하나에 지나친 슬픔의 옷을 널었다. 쥐어짜고 털고 펴서 널고 있는 새, 봄인지 생각인지 감정인지 모를 뭔가가 치솟아 올랐다.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인지상정이라지만 아침을 보내는 것만큼이나 사람을 보내는 것은 더 힘겹다. 소중함이란 그런 것일까? 보낸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쌓인 시간의 높이처럼 조심스럽고 불안하고 걱정스럽고 기대하며 가슴 저미는 층층의 공간이 만들어낸 기적 같은 것. 슬픔이 너무 지나치다는 롤랑 바르트의 생각이 옳다. 더 슬프고 더 아련하고 더 북받치고 더 설레고 더 고통스런 그 예민함을 떨쳐버리고 매사에 무뎌지자고 무난한 사람이 되자고 우격다짐까지 해봐도 굴복이 아니라 천성에 손들고 만다. 

지금까지 그렇지 않았던가? 

소중한 것은 사라져간다는 사실을  알고 공터에 앉아 하릴없는 시간을 보냈던 소년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던 유치환 선생님의 글을 울면서 믿었었다. 그래 '사랑을 해야지'

얼굴도 모르던 여고생과 편지를 주고 받으며, '더욱더 의지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애틋한 우정을 키우고 싶었던 고등학생 

한 밤에 들었던 장덕의 노래가 서글퍼 한 줄도 더 잇지 못한 편지글

헤어져 떨어지던 합격자 게시판 앞에 지나친 슬픔만 남았었다. 

봄나물 향에 애절함을 느끼고 봄바람에 그리움을 더하고 봄꽃에 슬픈 눈을 맞췄다. 

항상 너무 지나친 예민함은 감수성 때문이라고 한 롤랑 바르트가 곁에서 같이 울어줬으면 좋겠다. 꼭 내마음 같지도 않은 일들이 봄에 널려 있기에 어서 벚꽃비가 내리고 파란 잎사귀를 틔어줬음 좋겠다. 예민함은 비록 사라지지 않겠지만 감수성은 조금 잦아들겠지~